마음에남는문장

그 남자 264 (2019) - 고은주

FNCmaster 2019. 9. 12. 06:44

63:10

답설에서 돌아온 뒤, 나는 아벨 보나르의 책(「우정론」)을 찾아서 거듭 읽어보았다. 그가 인용해서 들려주었던 부분들보다 내 눈길을 더욱 잡아 끈 것은 남녀간의 우정에 관한 글들이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우정 속에서 찾고 있는 것은 엷은 연애의 맛일세'라든지 '우정이란 연애가 될 수 없는 감정에 붙여진 이름이네' 같은 구절···

  결국 남녀 사이에 우정이란 성립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으므로 「우정론」은 나에게 일말의 희망으로 읽혔다. 좌절된 연애도, 도달하지 못한 연애도,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는 연애도, 어쨌든 내게는 모두 연애로 느껴졌으니까.

 

 

64:2

  "이렇게 눈에 덮여 있어도 내 눈에는 길이 보입니다. 원래 있던 길, 앞선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이지요. 노신이 말했던 길도 본래부터 지상에 없던 길이 사람들의 왕래로 생겨날 때 희망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겨난 길을 무시하고 멋대로 걸어간다고 해서 또 다른 희망이 생겨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중략)

  "그렇다면 혁명도 그 길 위에서 해야 합니까?"

(중략)

  "혁명은, 길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길을 바로잡아 나가는 것입니다. 비뚤어진 길을 그대로 두면 점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테니까요. 때로는 과감하게 선로를 바꾸고 다리를 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은 원래의 바른 길을 되찾기 위한 과정일 뿐이지요."

  "무엇이 바른 길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혹시 내가 가는 길이 틀린 길일 수도 있잖아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 인간다운 인간을 실현할 수 있는 길. 그것은 틀릴래야 틀릴 수가 없는 길입니다. 내 경우에는 그 길이 본능적으로 편안한 마음을 불러오기 때문에 혹여 몸이 힘들더라도 저절로 그쪽으로 가게 되지요."

 

 

162:15

"연애가 주는 최대의 행복은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처음으로 쥐는 것이라고 스탕달이 말했더군요."

 

 

167:16

계절과 상관없이 날씨는 갑자기 추워졌다. 가을은 겨울처럼 흘러갔고 겨울은 지옥처럼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