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2019) - 김영하
【 추방과 멀미 】
18:19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다.
49:16
멀미란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이 느끼는 것이 다를 때 오는 불일치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도, 즉 자동차나 비행기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어지러움을 느낀다면 뇌는 이것을 비상한 상태, 즉 독버섯이나 독초를 먹었다고 판단하고 소화기관에 있는 음식물을 토해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는 멀미를 겪지 않는다. 차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뇌가 그에 맞춰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멀미는 뇌의 예측과 눈앞의 현실이 다를 때 일어난다고도 할 수 있다.
【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
87:3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 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
102:2
일본의 한 코미디언이 비싼 포르셰를 샀지만 막상 운전을 해보니 자기가 모는 모습이 보이지가 않더라, 그래서 친구더러 운전을 하라고 시키고 자기는 택시를 타고 따라갔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그가 택시 기사에게 저기 가는 저 포르셰가 자기 차라며 정말 멋지지 않느냐며 자랑을 하자 택시 기사는 어이없어하며 그런데 왜 택시를 탔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보 아니세요? 내 차에 타면 내가 안 보이잖아요?"
【 노바디의 여행 】
163:9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는 무인도에 도착했지만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어딘가 허전했던 것이다. 말 못하는 염소떼뿐이었던 것. 배가 채워지자 그의 마음속에 다른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인정의 욕구. 낯선 땅에 사는 존재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고향 이타케에서는 왕이었고, 트로이에선 영웅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언제나 섬바디였다. 그런데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바다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뭇잎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의 자아는 쪼그라들었다.
165:4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해외에 나가면 여전히 나는 노바디였다. (...) 작가가 되기 전에는 오히려 여행을 떠나면 특별한 뭔가가 되는 느낌이었는데 작가로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그 반대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데, 해외에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를 나만 아는 것 같았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자기만 아는 상태가 지속되면 키클롭스의 섬으로 쳐들어가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심리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179:16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185:13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보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