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남는문장

걷는 사람, 하정우 (2018) - 하정우

FNCmaster 2019. 10. 5. 07:04

[ 꼰대가 되지 않는 법 ]

182:8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작자는 촬영 현장에 놓은 자신의 의자마저 슬쩍 뒤로 빼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좋은 제작자는 촬영 현장이나 모니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서 스태프나 배우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제작자는 자신의 자리를 비우고 뒤로 물러나서 감독, 프로듀서, 배우들에게 스스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을 독려하고 그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일 뿐, 사실 제작자가 이렇게 뒤로 물러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칫 현장에서 본인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연기를 하고 감독은 연출을 하고 스태프들은 각 파트의 일을 한다. 그런데 제작자는 현장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이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어? 이 영화를 총괄하는 사람은 난데, 왜 내가 할 일이 없지?' '저 사람들이 나를 잊어먹은 거 아냐?'

이때 많은 제작자가 자격지심 때문에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 나도 이 현장에서 역할이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서 괜한 잔소리를 툭툭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자가 불필요한 참견을 하게 될 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연기에 대해 지적받은 배우는 당연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감독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이런 순간들이 자꾸 쌓이다보면 제작자는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럼 그 제작자가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려고 주의할까?

절대 아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냉랭할수록 어떻게든 더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

 

 

[ 언령을 믿으십니까 ]

186:3

그런데 가끔은 당장 집에 가서 귀를 씻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거친 욕설을 침 뱉듯 뇌까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를 향하 한 말이 아닌데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다. 잘 살펴보면 그들이 정말로 화가 나서 그런 욕설이나 비속어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서 말끝마다 욕설을 섞어 쓰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나는 별 뜻 없이 한 말도, 일단 입 밖에 흘러나오면 별 뜻이 생긴다고 믿는 편이다.

 

189:2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언령言靈'이라 부른다. 언령은 때로 우리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자신의 권력을 증명해 보이고, 우리가 무심히 내뱉은 말을 현실로 뒤바꿔놓는다. 내 주위를 맴도는 언령이 악귀일지 천사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

192:10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물론 그간 쏟아부은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나만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작고 얕은 마음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책임을 밖으로 돌릴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화나고 억울한 마음뿐이다. 그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니까 남 탓은 나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일의 결과에 상관없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던 연결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에 내가 연결돼 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감사는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 나를 충만하고 풍요로운 상태로 이끈다.

어쩌면 감사도 연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연결고리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사람을 만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처럼 쓴다.

 

 

[ 나를 확신할 수 없다 ]

223:1

나는 한번 결정한 일은 자신 있게 밀어붙이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 자신을 믿느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자신감을 가지는 것과 자신을 확신하는 상태는 얼핏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문제 같다. 만약 어떤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면 후회나 미련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열심히 보낸 시간 자체가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감이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열심히 한 일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라면 결코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확신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나는 사람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만약 지금 자신의 결정에 확신이 든다면 그 순간 자신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자신감과 확신, 이 두 상태의 차이를 나는 믹싱 작업을 하면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226:8

나는 일할 때 막연한 느낌이나 주관에 치우치지 않도록 나 자신을 계속 점검한다. 누군가와 생각이 다를 때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나의 기분이나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또 내가 그렇다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여정과 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지만, 결코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확신은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오만과 교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슬럼프 선생님 ]

275:21

슬럼프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넘어지고 좌절하는 날들에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러한 슬럼프를 많이 겪어보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경험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러한 슬럼프들은 나를 더 휘청거리게 하고, 다시 일어서는 데 더 오랜 시간을 소모하게 한다. 내가 아직 견디고 배울 힘이 남아 있을 때 찾아온 슬럼프는 실패가 아니라 나를 숙련시켜주는 선생님이다.

곧바로 현장에 나가 일을 시작하고 남들보다 빨리 거창한 성과를 내는 건 중요하지 않다. 충분히 담금질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담금질의 시간은 내게 슬럼프란 녀셕이 방문했을 때, 비로소 황금의 시간으로 변할 것이다.

각자가 겪을 슬럼프의 시기와 양상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우리 모두에게 슬럼프는 언제든 찾아온다. 슬럼프란 불운한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떨어지는 재앙이 아니라, 해가 나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처럼 인생의 또다른 측면일 뿐이다.

슬럼프란 선생님은 평생에 걸쳐 계속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나에게 슬럼프는 인생길의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겸허하게 만들어주는 스승이다.

 

 

[ 내가 만난 노력의 장인들 ]

282:19

보통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노력은 그 방향과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 걷는 자를 위한 기도 ]

292:9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