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2007) - 릴리 프랭키
55:19
가난은 비교할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띈다. 이 동네에서는 생활보호를 받는 집이나 그렇지 않은 집이나 사회적인 지위는 달랐어도 객관적으로는 어느 쪽이 더 여유 있게 사는지 별반 눈에 띄지 않았다. 부자가 없으니 가난뱅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쿄의 엄청난 부자처럼 유독 두드러진 존재만 없다면, 그 다음은 죄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것이어서 누구든 먹고 살기 힘든 정도가 아닌 한, 필요한 것만 채워지면 그리 가난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도쿄에서는 '필요한 것'만 가진 자는 가난한 사람이 된다. 도쿄에서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져야 비로소 일반적인 서민이고, '필요 과잉한 재물'을 손에 넣고서야 비로소 부유한 사람 축에 낀다.
(중략)
'호주머니 속에 넣어둔 100엔'은 가난하지 않지만 '할부로 사들인 루이비통 지갑 속의 전 재산 1,000엔'이라면 그건 슬프도록 가난하다.
개발 붐을 탄 패션빌딩에 들어선 어중간한 레스토랑에 줄을 서면서까지 기어들어가 어중간한 식사와 어중간한 와인을 마신다.
착취하는 측과 착취당하는 측, 무시무시한 승부가 명확히 색깔별로 분류되는 곳에서 자신의 개성이나 판단력이 함몰되고 마는 모습에 빈곤은 떠도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필요 이하로 비춰지는, 그런 도쿄의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가난하고 서글픈 것이다.
'가난'이란 아름다운 것은 아지만 결코 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도쿄의 '볼품없는 가난'은 추함을 넘어 이미 '더러움'에 속한다.
126:4
도회지 사람은 탄광 갱부를 차별했다. 그리고 갱부는 자신이 캐낸 석탄을 배로 실어 나르는 인부를 차별하고, 인부는 그들의 짚신을 삼는 직인을 차별했다.
한심한 차별은 어느 곳에나, 어떤 세상에나 바로잡히지 않는다네.
149:7
나 살아있는 동안은 자식의 몸을 대신하기를 염원하고, 나 죽어 떠난 뒤에는 자식을 수호하기를 기원한다.
192:11
아부지의 인생은 큼직하게 보였지만, 엄니의 인생은 열여덟 살의 내가 보아도 어쩔 수 없이 아주 작게 보였다. 그건 자신의 인생을 뚝 잘라 내게 나눠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218:17
이 회사 시험을 치러본 덕분에 나는 분명하게 취직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엄니에게 그런 내 마음을 밝혔더니 아부지에게 말하라고 하는지라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오우, 네 어머니한테 들었고만. 취직은 안 한다고 했담서?"
"응, 안 해요."
"어쩔 생각이랴?"
"아르바이트는 하겠지만, 우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래? 그렇게 정했으면 됐잖여? 네가 정한 대로 해. 그렇기는 한데, 그림을 그리건 아무것도 안 하건, 어떤 일에나 최소 5년은 걸리는 거여. 일단 시작하면 5년은 계속해. 아무것도 안할 거라면 최소 5년은 아무것도 안 하도록 해봐. 그 사이에 다양하게 생각을 굴려. 그것도 힘든 일이여. 도중에 역시 그때 취직했더라면 좋았다느니 어쩌느니 했다가는 너는 백수건달로서의 재능도 없는 거여."
495:19
어머니란 욕심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 자식이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주기만을
진심으로 바라고 기원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선물보다
내 자식의 다정한 말 한 마디에
넘칠 만큼 행복해집니다.
어머니란 실로 욕심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울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