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남는문장

달러구트 꿈 백화점 (2020) - 이미예

FNCmaster 2021. 11. 24. 09:05

147:7

남자는 그 후로도 잊을 만하면 이따끔 재입대하는 꿈을 꾸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기분이 나빴지만, 어느 날 문든 이깟 꿈 따위에 동요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는 이미 멋지게 전역했으니까. 그리고 다음번에 재입대하는 꿈을 꾸었을 때는, '그래, 군대도 다녀왔는데 내가 못할 일이 뭐가 있나'하고 웃어 넘겨버렸다. 
그는 전역하던 날 사회로 향하던 어색한 발걸음과 마음가짐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그리고 그 꿈을 이미 견뎌낸 이상, 그건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의 업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달러구트의 가게로 꿈값이 지급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남자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군대 가는 꿈을 꾸지 않았다.

여자는 반복해서 시험 치는 꿈을 꾸는 동안, 더 이상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지만 그때의 압박감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게 분명하다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그녀는 회사의 일은 물론이고, 결혼과 출산 등의 강제성도 없고 마감기한도 없는 모든 일에 스스로 기한을 두고 압박을 받는 자신의 모습도 알아차리게 됐다.
사흘 연속으로 시험 치는 꿈을 꾸고 일어난 어느 비 오는 아침,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무의식에 휘둘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비 내리는 창가에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앉아, 시험 기간에 스트레스 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는 대신, 어쨌거나 시험을 잘 치러냈던 순간들에만 집중했다.
'난 지금까지 잘해낸 내가 자랑스러워. 이전에도 잘해냈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든 결국은 잘해낼 거야' 자신을 무조건 믿는 마음,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마음, 여자에게는 이런 느슨한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여자의 꿈값이 지불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녀도 더는 시험 치는 꿈에 시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난 뒤에는 과거에 그런 꿈에 시달렸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다.

 

 

216:4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올해의 제가 바로 그랬죠. 저는 이번 꿈을 완성하기 위해 천 번, 만 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보지 않고, 절벽을 딛고 날아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저는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231:18

"영감이라는 말은 참 편리하지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대단한 게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결국 고민의 시간이 차이를 만드는 거랍니다.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는지, 하지 않는지. 결국 그 차이죠. 손님은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했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