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우주를 날아가는 새 ]
284:6
사찰 관리인에게 듣기를, 효종 스님은 절로 들어오기 전 세 살배기 아이를 잃었다. 잃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는 것인지 아니면 죽었다는 것인지, 어느 경우든 잃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본인의 아이는 맞는지, 아이를 잃어서 절에 들어오게 된 것인지, 궁금했찌만 관리인은 세 살배기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 외에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쩌면 관리인도 그 이상으로는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도 효종 스님에게 들은 것이 아니고 효종 스님을 보기 위해 찾아온 지인에게 들었을 수도 있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효원에게 해준 것은 아마도 효종 스님이 너를 각별하고 예쁘게 여기는 것에는 슬픈 운명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함이었을 거고, 누군가의 한없는 다정함과 친절함은 가라앉은 슬픔 위에 떠 있는 돛배와 같아서 그 안에 타 있는 이가 이 사실을 잊지 말하야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주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묵직한 슬픔은 파도를 만들지 못하는 잔잔하고 깊은 저수지 같았다. 효원은 노를 쥐고 있지 않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 두 세계 ]
340:21
(전략) 그 애에 대한 소문은 그때쯤 인근 지역 아이들을 통해 무성하고 무분별하게 퍼진 상태였다. 원조 교제를 하고 있다거나 이상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린다거나 귀신을 본다는 식이었다. 이런 소문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무런 증거도, 목격자도, 심증도 없었으나 일단 누군가 한번 물꼬를 트면 그때부터는 진위와 상관없이 모두가 믿고 싶어 안달 나게 됐다.
[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
358:20
그 이후로 사람의 이성적 판단은 믿지 않아요. 판단이 옳았다고 말하는 건 그저 그 판단이 맞게 하려고 노력한 것뿐이죠. 당신의 판단도 그렇게 되겠죠. 수면 장애 없음. 약간의 우울 증세가 있음. 폭력적인 성향은 없음. 이런 식으로 써놓으면 저는 그게 저인 줄 알고 그렇게 행동하겠죠. 하지만 그게 나쁘다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간은 끊임없이 상황에 맞게 변하고, 타인에 의해 규정되며 그렇게 타자에게 자신을 빼앗기니까. 그래서 타인의 평가에 그토록 예민하게 되죠. 그게 자신이 될 테니까.
'마음에남는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나 많은 여름이 (2023) - 김연수 (0) | 2023.08.24 |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2022)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0) | 2023.08.01 |
Inheritance (2011) - Christopher Paolini (0) | 2023.01.24 |
불안한 사람들 (2021) - 프레드릭 배크만 (0) | 2022.07.31 |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2021) - 태 켈러 (0) | 2021.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