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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형 옮김, 201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23

그때는 무심함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내게 잘못을 묻는 아버지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 비난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보았던 아버지가 옳았다고 확신한다. 완벽한 인간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정념이나 찰나의 욕망에 휘둘려 마음의 평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지식의 추구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매진하고 있는 공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어떤 연금술로도 합성할 수 없는 소박한 즐거움을 아끼는 취향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 공부는 분명 불법적이며 인간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이 항상 준수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느 한 사람도 가족의 애정이 주는 평온을 깨뜨리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노예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라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갖지 않았을 것이요, 아메리카는 좀 더 서서히 발견되어 멕시코와 페루 제국은 파멸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95:4

"그 어여쁜 아이가. 이제는 천사가 된 어머니와 함께 잠들어 있겠구나. 친구들은 슬퍼하고 흐느껴 울겠지만 그 애는 이제 평온하게 쉬고 있어. 암살자의 손길도 느끼지 못할 테고, 그 보드라운 몸을 뗏장이 덮고 있으니 아픔도 모를 테지. 우리는 더 이상 그 애를 불쌍하게 여겨서는 안 돼.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장 괴로운 법이야. 시간밖에는 아무 위로가 없으니까."

-- 동생 윌리엄의 죽음에 절망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을 위로하는 친구 앙리 클레르발의 대사

 

287:18

"... 새로운 인연과 새로이 샘솟는 애정을 말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세상 어떤 남자가 내게 클레르발과 같은 존재가 되고, 세상 어떤 여자가 내게 엘리자베트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굳이 특별히 탁월한 자질 때문에 생겨난 사랑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의 벗들은 늘 우리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있는데, 그건 나중에 사귄 친구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자질이지요. 어린 시절의 벗들은 우리가 아이였을 때의 성정을 알고 있어요. 훗날 아무리 변하더라도 완전히 지울 수 없는 본성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품은 동기의 진실성을 훨씬 정확하게 가려 우리 행동을 엄밀하게 판단할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이지 않은 이상, 형제들은 자기 형제가 사기나 기만을 저지를 거라고 서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커서 사귄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의혹에 휩싸이게 될 수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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